2010년 2월 6일 토요일

아가씨에게 크로키 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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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취중연필크로키, 1호선 양주행. 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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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취중연필크로키, 1호선 양주행, 2010.2.4.>


 

지하철을 주로 탈때면 반드시 하나 이상의 크로키를 한다.

눈이 마주치면 아무래도 서로가 민망할 수 있는지라 슬쩍슬쩍 보고 그리는 편이다.

물론 어떤 때는 옆에서 그리는 것을 보다가 건너편 자리로 가서 포즈를 취해주는

정말 고마운 분들도 있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

 

지난 목요일에는 저녁모임에 나갔다가 술을 좀 과하게 마시고 비몽사몽하며 집에 가는 전철을 탔다.

다행히 자리가 일찍 나서 앉게 되었다.

술기운이 오르고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은 안오고 몸 안팎이 불편했다.

그래서 혹시 실수로 반납을 하게 될까 정신을 좀 차리고자 크로키북을 꺼내 앞에 있는 사람들을 그렸다.

아마 서너 명을 그린 후였을까 사람들이 많이 타서 시선이 가로막혔다.

그럼 좋다. 내 앞에 선 사람들을 딴 곳을 보는 척 하며 그렸다.

직장동료인 듯한 남자와 여자.

 

여자 분을 다 그리고 남자 분을 그리는 데 내 바로 옆자리에 자리가 났다.

여자 분이 앉았다.

슬쩍 가린다고 가리고 일행인 남자를 그리는데 옆에 눈치가 이상하다.

 

"어머, 호호호 정말 똑같아요~!"

 

ㅡ.,ㅡ;;;;;;;;;;;;;;;;;;;; 힉!  술이 확 깼다가 다시 취했다.

 

"아... 감사합니다..."

 

손은 마무리를 하기 위해 계속 그려나갔다.

여자분이 남자일행에게 말했다.

 

"이 분이 그리시는데 정말 똑같아요. 호호호..."

 

남자 분이 보고 싶으시단다.

또 술이 깼다가 다시 취한다.  ㅡ.,ㅡ;;;;;;;;

 

"잠깐만요. 다 그린 다음에..."

 

그래서 갑자기 주변의 눈길들이 쏠리는 가운데 마무리를 했다.

다 그린 후 보여주니 다행히 맘에들고 재미있어한다.

분위기 좋다. 먼저 그렸던 여자분 그림도 보여줬다.

 

"어머머~ 저랑 똑같아요. 호호호"

 

그래, 평소에 이런 것 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자.

 

"잠깐만요. 사진 찍고 드릴게요."

 

"네? 정말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남자분이 "어? 우리 내려야 하는데..." 한다.

이런 하필 타이밍이 이렇게 되나 싶었다.

 

그러나 나는 취한 놈. 취한 김에 용기를 더 냈다.

 

"사진찍고나서 드릴테니 한 정거장 더 가세요." ㅡ,.ㅡ;;;;;;;;;;;;;;;;;;;;;;;;

 

그랬더니 정말 한 정거장을 더 가셨다.

사진을 찍어 그림기록은 남긴 후 그림을 찢어 드렸다.

 

"어머,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두 분이 모두 좋아하신다.

 

"아..제가 고맙지요. 이걸로 작은 기쁨을 얻으신다면 저도 감사하지요."

 

그래서 한 정거장 더 간 값으로 내 그림을 드린 셈이 됐다.

블러그도 알려달라고 해서 블러그 주소도 적어줬다.

 

사실 평소에 그림을 그려서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그림을 당한 분들에게 그림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왔었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민중미술의 뜻이고 지향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 속에서 그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데 그건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

더욱이 자칫 기분을 상하게 되면 서로 곤란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내 그림 받고 기뻐하는 일을 겪고보니 나도 감사하고 기쁘다!

 

자주는 못하겠지만 가끔은 내가 그린 그림을 그림당한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다.

그래서 작은 재주로나마  사람들이 삶 속에서 깜짝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민중미술이 꿈꾸는 세상을 살짝 맛보게 하고 싶다.

 



P 수리동동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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