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3일 수요일

24반 무예, 경당을 배우다 - 나도 한때는 -

<24반 무예, 경당을 배우다>
- 나도 한때는 - 목검을 휘두르며 백운공원에서 땀 흘리던 시절

 

 

 

<사진 - 이사직후 24반 무예를 배우던 시절의 목검이 나와 미소지으며 나도 한때는...하며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서 이것 저것 찝쩍거리며 어깨너머로 배우기도 했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호신술 관련 책들을 나름 연구하며 뜯어보고 움직임을 따라해 보곤 했다.
그 중의 하나는 생각날 때마다 틈틈히 따라 연습을 열심히 해서 지금도 가끔 할 만큼 된 것도 있다.
'소호연' 이라는 중국무술의 품세다. 어린 나이에 중국무술인 쿵푸 혹은 18기를 멋있어 했던 것 같다.
'소호연'은 젊은 호랑이와 제비. 뭐... 비호라는 얘긴데 20여 동작이 안넘는 품세로 3미터 이내 범위에서
앉고 서고 좌우로 도는 동작들이 제법 맛나고 간단히 체조삼아 운동하기에 좋다.

 

아, 24반 무예로 넘어가자.
90년대 초반이었을까? 인천 백운 역 옆에 공터가 있었다.
막 시민공원으로 만들어진 때였고 당시 주변에 사람들이 그리 많이 살 지 않았다.
지금은 천만의 말씀이지만 당시엔 인천으로 치면 외곽이었기 때문에 공원을 찾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거기서 '24반 무예-경당'을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눌님과 함께 운동삼아 다니기로 했다.


그때 통혁당 재건 기도 및 남민전 사건 연루로 2개의 무기징역형 선고를 받고 '쌍무기수'라는 별칭을 듣던 임동규선생이 감옥에서 우리나라 무예도보통지를 연구하고 24반 무예를 복원한 덕분에 한참 경당, 24반 무예 바람이 불었다.

 

지금도 기억이 강하게 남은 것은 준비운동으로 태껸의 품밟기와 기본적인 24반 무예 품세를 배운 다음에
나무검을 들고 공원의 끝에서 끝까지를 검을 휘두르며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게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흘리던 땀의 희열이 미세하게 내 몸에 남아 있는 듯 하다.
품세중에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황금닭어쩌구...즉 '금계독립세'인가 하는 자세다. ^^;;

 

이사를 다니다 보면 구석에 잊혀진 채로 있던 물건들이 튀어나와 옛날 생각에 젖게 하는데
이번에는 24반 무예를 배우던 당시 목검이 나와 옛날 생각에 잠시 빠져들었다.


새삼 당시에 흘리던 땀, 마눌님과 함께 밤길에 돌아오던 길,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과 잔디에 앉아 김밥을 먹던 일이 떠오른다. 당시 24반 무예를 가르치던 내 또래의 사부님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목검을 쥐고 자세도 한 번 취해보고 만지작 거리다가 문 옆 모서리에 갖다놓고 이 글을 쓴다...

 

 나도 한때는 그랬던 적이 있던 것이다. 그때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 나는 꿈을 꾸고 실천을 하고자 했고 그때의 내 고민들이 우리 사회를 올곧게 만드는데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게 한때로 끝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그때의 꿈과 실천이 '오늘의 나'라는 생각에 그 푸르렀던 날들을 되새기며 내일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는 밑거름으로 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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